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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했지만 아직 모르는 사람이 있어 공지합니다.
허난설헌을 따라가는 강릉 해돋이 투어를 준비하며 두편의 영상을 볼 거예요.

첫번째 영상은

허난설헌이 리칭짜오를 만났더라면 - 강릉에서 산동까지, 천 년의 여행
haja Visual Rave의 dStory (digital storytelling) 다큐멘터리 시리즈 첫번째
2005 아시아 소녀들을 위한 디스토리 페스티벌 (여행, 경계를 넘는 소녀들)의 프리뷰 영상이기도함.

여자가 글을 쓰며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일찍부터 중국의 책과 설화집들을 읽으며 고된 현실을 벗어나 신선의 세계를 그리는 유선시를 썼던 허난설헌. 우리는 허난설헌이 읽었을 중국의 시들을 찾아보면서 허난설헌보다 500년전 송나라에 태어난 여자시인 리칭짜오를 알게되었다. 평생 아름다운 시들을 쓰며 살았지만 죽기 전 힘든 시기를 보냈던 공통점을 갖고 있는 두 시인.
우리는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허난설헌과 리칭짜오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래서 우리는 허난설헌과 함께 리칭짜오를 만나러 이곳 중국에 왔다. 500년전, 그리고 1000년전과 접속하는 시간 여행.


두번째 영상은 8일 KBS에서 방영되었던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허난설헌

[제23회] 왜 조선에서 여자로 태어났을까
                                  허난설헌



▣방송 : 2007. 12. 8 (토) 20:10~21:00 (KBS 1TV)
▣진행 : 한상권, 이상호 아나운서
▣연출 : 송철훈 PD
글,구성 : 박소희 작가  

17세기 중국 북경.
장안의 문인들이 몰려든다!
최초의 한류(韓流)가 시작되었다!

문인들이 얻고자 한 것은 조선 여인의 시(詩).
명나라 사신들은 조선에 오면
허난설헌의 시를 구하고자 허균을 찾았다.

당시 조선은 왕실 여성에게도
한문을 가르치지 않던 시절!
그녀는 어떻게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천재 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세 가지 한을 안고 세상을 떠난 여인 허난설헌.
그러나 그녀의 비상한 재주는 국경과 시대를 넘어섰다.

조선최초의 한류(韓流)!
그 주인공인 허난설헌을 만나본다.

허난설헌의 詩.
           중국에서 꽃피워 최초의 한류(韓流)가 되다!

 
<토론 수업 중인 북경대학교 학생들>

북경 대학교 동방언어대학. 학생들의 수업이 한창인 이곳에서 우리는 낯익 은 이름과 낯익은 시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이 열띤 토론과 함께 공부하고 있 는 작품은 허난설헌의 시.
그들은 어떻게 난설헌의 시를 가지고 수업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들은 난설헌의 시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 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최초의 한류가 된 허난설헌의 시. 그 생생한 현장을 <한국사 傳>이 찾아가본다..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지원병과 함께 조선에 온 시인 오명제. 그는 조선의 시와 문장을 수집 중이었다. 그를 맞이한 허균은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누이의 시를 건네게 되는데....
오명제를 통해 중국으로 건너간 난설헌의 시. 그 후 허난설헌 의 시는 중국의 조선시선을 비롯한 여러 책에 수록되고, 중국 에서 최초의 한류(韓流)가 된다!

<허난설헌의 시가 실린 조선시선>



 

여덟살 여자신동.
            허씨 가문에서 자라다!

당시 조선 사회는 왕실의 공주에게도 한글 외의 글을 가르치지 않는 시대. 허난설헌은 어떻게 그런 시대에 천재시인이 될 수 있었을까?

 

당시 여성이 받을 수 없는 파격적 인 교육 속에서 자라난 허난설헌. 그녀의 아버지인 허엽은 교육에 있 어서 아들과 딸의 구분을 두지 않았 다. 그 덕에 허난설헌은 오빠인 허 봉과 남동생 허균, 이들과 함께 수 업하며 학문을 익혔다. 특별한 교육 덕으로 천재시인의 재량을 닦으며 자라난 허난설헌.

그리고 여덟 살 나이의 그녀는 신선의 세계를 노래한 <백옥루상량문>을 짓기에 이른다. 이 시를 읽은 중국에서 그녀를 빼어난 재능을 보고 여신동이라 칭송하는데....


 

천재로 태어나 ‘조선의 여인’으로 살아야 하는 삶.

 

결혼 이후 허난설헌의 삶은 어떠했을까? 당시 조선은 남자가 결혼과 함께 신부 집에서 생활하는 ‘남귀여가혼’이 일반적 사회. 그러나 16세기 이후에는 결혼 후 신부가 바로 시댁에 들어가 생활하는 풍습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정든 친정을 떠나 시댁으로 들어가 살아야 했던 허난설헌. 결혼과 동시에 그녀에겐 낯선 시댁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 각종 제사와 집안 행사를 도맡고 시어른을 모시며 살아야 하는 종부의 삶. 이른바 ‘조선의 여성’으로서의 삶은 그녀의 재능을 가두기 시작한다.



스물 일곱 꽃다운 나이로 세상에 지다!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시인.
 

계속 과거에 낙방한 허난설헌의 남편은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내에게 열등감을 느꼈고, 그녀의 시어머니는 시 를 쓰는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의 지할 것 없는 그녀는 두 아이와 시를 위 로로 삼으며 살아갔다. 그러던 그녀에게 계속되는 일들이 찾아온 다. 상주객관에서 객사를 하게 된 아버지 허엽, 질병으로 연이어 떠난 그녀의 두 아이들.

그리고 그녀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오빠마저 김화 근처에서 죽음을 맞이하는데....
계속 밀어닥치는 불행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예언한 시를 한편 남긴다. 그리고 그 예언처럼 스물일곱 나이에 눈을 감는다.

碧海浸瑤海
靑鸞倚彩鸞
芙蓉三九朶
紅墮月霜寒

; 푸른 바다가 옥구슬바다를 적시고
; 푸른 난새는 오색 난새와 어울리네.
; 아리따운 부용꽃 스물일곱송이
; 붉게 떨어지니 서릿 달이가 차갑구나.

<몽유광상산시 夢遊廣桑山詩>



동생 허균에 의해 다시 살아난 누이의 시(詩)
시대와 공간을 넘어 현재에 살아 숨 쉬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세상을 뜬 허난설헌. 그녀는 죽기 전 자신의 시를 모두 태워 달라고 한다. 이를 안타까 워하며 친정에 남아 있는 누이의 시를 모으기 시작한 것은 그녀의 동생 허균. 그 리고 그런 허균의 노력으로 인해 그녀의 시는 후 세까 지 전해진다.
그러나 성리학에 빠져 사 는 조선 선비들은 그녀의 시에 관해 냉혹한 평가만을 남기는데....

숨어 있는 보석이 언젠가는 제 빛을 내듯, 그녀의 시는 시대를 뛰어 넘고,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못 다한 그녀의 생은, 그녀의 시와 함께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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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리타
    2007/12/12 20:4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단지~ 메일 보냈어요. 확인해 주세요. ^^
  2. 비호
    2007/12/13 14:5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짱 재밌었어요~ㅋㅋㅋ 이쁜 난설헌씨랑 옛 죽돌들의 새로운 모습들 와우. 저도 그런 여행 해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