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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 시 암송 과제'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10/11 [scrap]시를 외우는 소리-박노자

  시를 외우는 소리 | 만감: 일기장 2007/10/10 18:35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8951  

저는 학교에 다녔던 시절에 국문학 수업이 너무 부담스럽고 싫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전통주의적 "공부"관이 강했던 선생들이 대개 우리들로 하여금 시를 많이 외우게 했기 때문입니다. 푸시킨부터 마야코브스키까지.... 짧은 시도 아니고 커다란 서사시 (예컨대 푸시킨의 <예브게니 오네긴>)의 상당부분까지 '암송과 낭독'의 대상이 돼야 됐습니다. 또 칠판 앞에 나아가서 낭독을 해야 하는 문화라 못할 때의 그 수치심... 아마도 한국에서 옛날 서당에 다녔던 아이들이 <論語> 한 줄을 틀리게 외웠을 때에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사회주의 사범학이다 보니 체벌이 없었던 것이었지요. 그런데 낭독을 잘 못했을 때의 그 수치심... 어느 체벌보다도 더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었습니다.


그 때야 악몽과 같은 부담이었지만, 지금은 저는 그 시절에 대해 감사를 느낄 뿐입니다. 싫었든 좋았든 일단 "외우는 습관"을 잘 들여놓았기 때문에 나중에 한국어 공부에도 도움이 됐고, 한국의 시에 대한 사랑 키우기에도 도움됐습니다. 사실, 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 번 암송하여 "자기화"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내가 기억 못하는 텍스트를, 내 인식과 하나로 만들어 "타자"의 입장이 아닌 "합일"/"彼我 一致"의 입장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래서 지금 같으면 저는 과거의 습관을 그대로 살려 새로운 한국시를 계속 외우기도 하고, 학생들에게 낭독해가면서 한국사에 대한 "내재적 이해"를 돕도록 하기도 합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놓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직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학살의 밤 12시였던가  (김남주, <학살>).


이러한 시 하나 정도 외우지 않고서는 한국 현대사를 "피부"로 느낄 수는 없지요. 하여간 암송만을 용사로 아는 교육도 잘못돼 있지만, 암기/암송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지 않은 교육 역시 "사람을 바꾸는" (化人)의 효과를 달성하기 힘들 듯합니다. 특히 국문학은 그런 것 같아요.토론도 물론 중요하지만 뭘 잘 모르고, 자기화된 텍스트가 없는 상태에서 토론다운 토론이 꽃피겠습니까?


그런데 미국 분들께 여쭈어보니 그 쪽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시 암송과 낭독을 안시킨답니다. 참 그러네요... 그러면, 그 아이들보고 평생 먹고 살 "마음의 양식"을 어떻게 준비하란 말씀입니까? 마음 속으로 외울 시가 없는 사람이라면 어려움에 처할 때에 참 외로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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