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규 | 한국디자인문화재단 사무국장 |
![]() 딴 세상 같은 골목길은 이방인에게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간혹 사무실 앞 길에 아이들이 자리를 깔고 놀고 있으면 2m 남짓한 폭에 구불구불한 길의 스케일이 아이들에게 딱 맞아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어서 그런지,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한 탓인지 한적하기만 하던 골목길도 어느덧 주말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늑하던 공간은 늘 낯선 사람의 카메라에 노출된다. - 본문 중에서 애초에 모든 길들은 물길이었다고 하는 말의 그 깊은 의미를 생각해보자. 왜 사람들의 길은 물길을 따라서 생겨나는가? …… 길은 물이다. 자연스러움이다. 그리고 또한 자연 속에는 나무가 있다. 위대한 나무가 있다. 나무는 걷지 못하나 자신의 길을 만든다. 나무는 뿌리에서부터 마지막 잎사귀에 이르기까지 수액을 나르며, 고속도로(줄기), 지방도로(큰 가지), 골목(잔가지)에 이르기까지 나무마다 갖고 있는 생명의 구조에 따라 다양한 길을 만든다. 정기용, <서울 이야기> 중에서 집들 사이에서 길을 잃다 삼청동에서 일 년 남짓 일했다. 아침 한산한 골목길로 들어서는 출근길, 늦은 밤 어슴푸레한 길을 나서는 퇴근길 덕분에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면으로 내려와 곧장 차들이 다니는 대로에 들어서는 것과는 감히 비교할 수 없다. 그래도 강남에서 몇 년 살았다고 처음엔 한옥이 빼곡히 들어선 골목길 생활이 순탄치 않았다. 적어도 왕복 2차선 정도 되는 길을 원근법과 랜드마크에 익숙한 감각으로 동서남북을 잘 판단해서 걸어 다니다가 집과 집 사이가 좁고 굽은 길을 따라 가니 모든 것이 코앞이라서 과학적인 공간감각은 딱히 필요치 않았다. 더구나 도시형 한옥의 겹겹이 늘어선 처마 선을 따라 이 골목 저 골목 들락날락하다 이내 방향감각을 잃은 적도 있었다. 반듯한 격자도 아니고 좁은 골목길에서 바로 위의 하늘만 보이는 곳에서는 랜드마크를 찾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이 곤란은 처음 찾는 사람들에게는 낭패지만 생각해보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거주자를 방문자와 구별해주는 기능을 한다. 말하자면 제아무리 잘난 방문자라도 식은땀 흘리면서 그곳이 주민의 홈그라운드이고 자신은 이방인이라는 점을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찍고 찍히는 불안한 아늑함 딴 세상 같은 골목길은 이방인에게도 아늑한 느낌을 준다. 간혹 사무실 앞 길에 아이들이 자리를 깔고 놀고 있으면 2m 남짓한 폭에 구불구불한 길의 스케일이 아이들에게 딱 맞아 보인다. 디지털 카메라가 많이 보급되어서 그런지,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한 탓인지 한적하기만 하던 골목길도 어느덧 주말이면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아늑하던 공간은 늘 낯선 사람의 카메라에 노출된다. 삼청동뿐 아니라 골목의 모습이 남은 곳이면 어디든 출사(出寫) 장소가 되어 카메라에 곧잘 담긴다. 주말에 골목길에 들어서면 왜 한국의 DSLR 베타테스트 시장이라고 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 블로그에 떠도는 많은 흔적을 보면 이제는 희귀한 독특한 풍경으로 묘한 매력을 지닌 곳이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자꾸만 좁은 길이 커다란 건물을 새로 짓느라 사라지는 것을 보면 다 그런 마음은 아닌 모양이다. 개발업자가 장삿속으로 건드리지 않더라도 골목 안 집에서 사는 사람과 또 그 집을 소유한 사람들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곳일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고 이방인의 눈에 들어온 아늑함은 사진으로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가끔 구경 삼아 오거나 늘씬하고 예쁜 모델의 배경으로 필요한 사람과는 처지가 다르기 때문이다. ![]() 관찰과 개입의 기쁨 지난해 봄에 사무실 사람들과 함께 주변 길을 관찰하기로 했다. ‘삼청동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무작정 시작했지만, 반쯤 동네 사람이 되어가는 관찰자 정도의 자격으로 공간에 개입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정작 사무실로 쓰던 집 안팎도 돌보지 못하면서 모퉁이 빈집이며 축대 난간이며 기념터석에 괜한 신경을 쓰곤 했다. 먼저 그곳에 자리를 잡은 이들과 의견을 나누었더니 자연스레 생겨난 골목길은 그냥 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옛날 사대부들이 자신의 집을 막다른 길로 만들려 했던 이기적인 의도가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고,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그냥 둔다고 그저 남아 있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동안 작가들이 개입한 것도 인문학적으로 골목길을 예찬하는 것만큼이나 의미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골목을 지키는 것에 동의하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일상적인 공간에 작가들이 개입하는 기회가 잦아서인지 조형물을 일방적으로 세우는 수준은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고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본보기도 늘어나고 있다. 꼭 작가의 작업이 아니더라도 이미 골목은 그냥 둘러만 보아도 포스가 느껴진다. 간혹 동네 어른들의 말씀을 듣게 되면 이웃의 사연뿐 아니라 괴담과 야사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 캐면 보물이 하나 둘 나오듯이 사무실 동료들이 새로운 흔적을 발견하고 우연히 들은 새로운 이야기가 차츰 쌓여가기도 한다. 이런 일상적인 발견에서 이미 상상력과 창작 욕구가 일고 있었던 것 같다. 삼청동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처음부터 잘 알고 덤빈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개입을 생각하면서 한곳 한곳 수소문하다가 그곳의 주인이 누군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터를 잡고 오래 사신 분과 세 들어 몇 해를 사시는 분, 조그만 가게를 근근이 운영하시는 분, 세련된 가게를 열어 의욕적으로 장사를 시작하시는 분 등 저마다 처지가 다르고 동네를 찾는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다른 것을 발견했다. 정말 잔가지처럼 뻗어 나온 길에 또 보이지 않는 복잡한 결이 존재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저 출퇴근하는 사무실로만 이용했다면 평온하고 텅 빈 길로만 알고 넘어갔을 일이었다. ![]() 소소한 것들의 매력, 거칠거나 아름답거나 매력적인 도시를 만들려고 애를 쓰면서 장소 마케팅, 명품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쓰는 상황에서 골목길은 시간을 두고 쌓여온 콘텐츠를 담은 또 다른 창조적 공간으로 더욱 소중해진다. 어쩌면 나이브한 위안의 정서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길에 바로 닿은 작은 창의 철로 만든 살과 집집마다 서로 다른 담의 질감, 계단과 옹벽에 박힌 돌의 모양새가 탐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것들은 향수에 기대어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박물관의 디오라마(diorama)와 견줄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투박해 보여도 돌에 뭐 하나라도 새겨보려고 했던 흔적, 철판을 꼬아서라도 어색함을 감추려고 했던 증거를 확인하면서 새로운 창작의 동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좁은 길에서 작품을 만나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터다. 디자인문화재단이 있는 신문로 안쪽 길은 삼청동에 비하면 일방통행으로라도 자동차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만 초입의 가정집을 개조한 식당 몇 개를 빼면 큰 집 담과 회사, 대사관 건물만 무뚝뚝하게 있다. 작은 크기의 이동 전시장인 ‘디자인큐브’를 사무실 앞 테라스에 두고 사무실 입구에도 소장품과 젊은 작가의 작업을 전시한다. 아직은 맥락과 무관하게 어정쩡한 제품이 진열된 정도지만 작가들이 자발적인 탐구와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골목처럼 지극히 일상적인 공간에 낯선 무엇인가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을 두고 적응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해법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밖에도 길가에 늘어선 지주를 비롯해서 쓸모없어진 시설과 구조물들을 걷어내는 것과 골목까지 들어선 자동차에서 보행자를 보호하는 것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은 그 기둥 사이에 떡하니 널린 빨래와 옹벽에 쌓인 낙서를 보는 것은 즐거운 경험이다. 또 주차 때문에 등장하는 원초적인 표현이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 갈등을 넘기는 독특한 전술도 발견하게 된다. 디자인 바람을 맞는 골목길 최근에 디자인 서울 거리 사업이 발표되어 결국 삼청동길을 가꾸려는 자발적인 노력이 요원해진 느낌이 든다. 꼭 대규모 행사에 맞추거나 조직적인 지원 사업에 의존해서 획기적인 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동안 삼청동은 작은 규모의 길에서 개인이 발휘한 창의력이 어우러지면서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은 보기 드문 사례였는데 그 매력은 세련된 강남의 길거리로 대체될 것 같다. 대세를 거스를 수 없다면 뒷골목이라도 잘 보전-오래 두고 다듬어가는 것을 전제로 하되 강압적인 변화를 막는다는 의미에서-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조금만 폭이 넓어도 자동차가 드나들고 그 길을 따라 하나 둘 집이 가게로 바뀌어가고 있다. 을씨년스럽던 골목에 작가들이 찾아들고 재미있는 작업실과 작은 가게가 생기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찾아오게 된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된 것 같다. 집세가 오르고 새로운 가게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공간을 살리려는 노력은 거꾸로 상업화를 앞당기는 꼴이 되었으니 이제 대개의 골목이 사라져간 과정을 다시 지켜보게 되었다. 아직 우리에게는 그 골목이 의미 있고 여전히 아름답다고 항변하는 것으로 버티기를 기대하면서 또다시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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