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min write
blogbloglocation loglocation logtag listtag listguest bookguest book
Add to favoritesrss feed

마석리뷰

2008/12/06 09:32
posted by 로이

마석리뷰

컨테이너 어페어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조지은씨의 제안으로 마석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석의 첫 느낌은 스산함과 고요함 이었다. 무허가로 지어진 공장들과 집들 버려진 공장들 그 리고 어색하게 서있는 아파트 한 동이 그곳을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공간처럼 만들고 있었다.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외국인 노동자들만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 이였다.

토크쇼

토크쇼는 마석의 이주노동자 분들이 살고 계시는 기숙사 뒤쪽에 있는 공장에서 진행 되었다. 조지은씨가 질문을 하시고 네팔과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이주 노동자 분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마석에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살고 있고 주로 친구나 가족들이 이곳을 추천해서 왔다고 한다. 그동안 마석에서는 정부의 단속이 심하지 않았고 마석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그들을 크게 경계하지 않아 살기가 참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무자비한 단속이 있은 후 외국인노동자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낸다고 했다. 그밖에 이분들이 이주노동을 목적으로 다른 곳이 아닌 마석에 온 이유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위주로 얘기들이 진행되었다.

 토크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그들이 이 마석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듯 보였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다국적, 다인종의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대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다 보니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자연스레 마석이라는 장소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떤 이는 마석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만들이 모여 형성된 슬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마석이라는 곳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한국의 어떤 도시나 장소보다도 더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는 슬럼이 아닌 제 2의 고향처럼 보였다.

마석이란 곳이 이주노동자 분들에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마석의 주민들 때문 일 것이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이는 물론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있겠지만 이런 이유가 이주노동자들이 마석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마석이라는 동네에는 자본에 의한 계층이 없는 듯 보였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 분들이나 마석의 주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소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결국 외부의 돈 많은 사람들과 정부이다. 정부는 마석을 재개발지역으로 선정했다. 마석의 건물들은 대부분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보상금도 받지 못한체 쫓겨 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주 노동자들은 보상금은 꿈꾸지도 못하고 자본에 의해 강제 이주를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결국 자본, 돈이라는 것에 묶여있는 존재들일 뿐이다. 돈을 더 많이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본에 의한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서글픈 사실은 이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층은 전세계 어디서든 만들어져 있다는 일이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라는 사람조차도 돈이나 자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노예일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47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12/06 18: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대대학원신문56호> 도현주[i]_ 타자들의 이웃




    ‘미술적’인 행위들이 우리의 비루한 삶에 끼어들거나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까지 일까? 미술, 혹은 예술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행위의 주관자인 미술가/예술가는 어디에 자신을 위치 지어야 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 미술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공공미술’, 혹은 ‘미술의 공공성’에 관한 수많은 논의와 담론들은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종 잘못 이해된 ‘손쉬운’ 전략들이 난무하기도 하는 최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특정한 지역을 선택해 소위 ‘문화적 소외 지역’이라는 일방적인 호명을 일삼고, 장소에 대한 이해나 맥락이 제거된 조악한 조형물 설치와 벽화 그리기 등의 ‘환경미화/정화’ 에 급급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미술은 어떻게 예술과 삶이 관계하며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단히 성찰하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매개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들 사이에서 우리는 작가 도현주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한 사람의 미술가 일뿐만 아니라,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녀가 진행하는 작업이 기반하는 특정한 커뮤니티들의 ‘이웃’으로 존재하면서 공공미술이 정말로 문제 삼아야 할 것들을 고민한다. 도현주의 작업이 진행되는 장소는 주로 한국사회의 곳곳에 존재하는 과도한 근대적 욕망의 잉여로 남아있는 기이한 디아스포라적 공간들이다. 그 곳은 수 차례에 걸쳐 기억을 봉인 당하면서 결코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타자들의 (비)장소로 남겨진 곳들이다. 도현주는 그러한 지역의 특성을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차근차근 읽어내고 연구하면서 ‘과정’이며 ‘태도’로서의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마석의 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일하며 거주하는 네팔인 커뮤니티와 함께 진행한 <마석 이야기>(2006-2007)[ii]는 도현주의 예술적인 관심을 잘 드러내주면서 ‘공공미술’의 한 패러다임을 제안한 의미 있는 기획으로 꼽을 수 있다. 마석은 1960년경에는 한센인들의 주거가 이루어졌고, 1990년경부터는 국내 최대의 가구단지가 조성되었지만, 현재에는 이 지역의 30퍼센트 이상이 아파트단지 조성의 명목으로 개발 중에 있다. 가구공장의 3D노동력을 메우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이 이 지역 안에서 일종의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 지역의 개발 전망 내에서 이들 네팔인 커뮤니티에 대한 고려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현주는 그녀의 몇몇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이 마석지역의 네팔인 커뮤니티와 접촉하였고, 그녀는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그룹에 주목한다. 비 장소화된 공간의 타자화된 사람들, 그리고 그 내부에서도 침묵하거나 주변으로 물러나 있는 여성이주민들과 이웃하기 위해 도현주가 시도한 것은 그녀들과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손바닥 워크숍>이었다. 축구경기 한번으로도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였다.



    그러나 작가는 점차 집단적이고 내재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공동체’가 이 “여성”들에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의문하게 된다. 작가는 프로젝트 진행일지를 통해 하루하루를 기록하지만, 실은 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날이 벌어진 사건과 사고들이라기 보다는 이 여성들과 이루어가는 공동체와 소통에 대한 거듭되는 재정의일 것이다. 작가는 여성 이주민들의 서툰 한국어를 더 집중해 듣게 되면서, 그녀들의 정신적인 불안이 몸의 병으로 기어나올 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곳으로 접속해 들어가면서 비로서 어떤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공공의 시간을 얻게 된다. 모리스 블랑쇼가 전했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즉 공동체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생성해 내는 순간이다. 타인과 이웃함으로써 생겨난 보이지 않는 공유의 공간이야말로 도현주가 얻어낸 ‘공공성’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된 <부동산 프로젝트>[iii]에서 작가는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iv] 라는 간판이 걸린 폐허가 된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경험했었다. 이 프로젝트의 반쪽 부분이었던 가리봉지역 역시 경제성장의 편집증적인 욕망이 불러들였던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기억들이 미끄러지며 사라진 곳, 이후엔 전지구적 자본의 이동을 따라 몰려든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이제는 뉴타운 정책의 바람에 힘입은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의 기억은 축적되지도 기입되지도 않은 채 잊혀질 것이 분명한 장소였다. 도현주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역시 그들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 타자들의 이웃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타인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러한 그녀의 ‘이웃하기’의 태도는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향해 오늘도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기 위함이다.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 (但願人長久)”





    --------------------------------------------------------------------------------

    [i]작가 도현주는 197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학교 조형과를 졸업했고 경원대학교 환경조각과에 재학중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예술대학을 졸업했다. 미술 프로젝트의 작가와 기획자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예술가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현재, 2007년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인 <정릉지역 공부방 프로젝트>에 매진 중이다.

    [ii]<마석이야기>의 진행 블로그는 http://artincity.org/maseok/ 이다.

    [iii]<부동산프로젝트>의 관련정보는 http://club.cyworld.com/danolhttp://club.cyworld.com/toari 에서 볼 수 있다.

    [iv]소동파의 사(詞) '수조가두(水調歌頭)'의 한 구절이자 다놀동의 한 폐상점에 간판으로 붙어있는 문구였다.
  2. 2008/12/06 18:0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지난시간에 이야기했던 작가 '도현주씨'에 대해서 내가 예전에 썼던 글.

부타씨는 우리가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하는 이주노동자셨다.
그렇기에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만나기 위해 하자로 오셨다. 상당히 오랫동안 이주노동자 생활을 해오신 부타씨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깊으셨고, 많으신 분이셨다.
그런 부타씨는 내가 생각하기엔 부타씨는 주로 자신의 경험, 꿈, 이유, 현실에 관해서 말하셨었던 것 같다.

나는 부타씨가 자신의 꿈을 말하셨을 때 정말 놀라웠다. 하자센터의 북카페 같은 것을 짓고 싶으시다는 꿈 때문에 말이다. 보통 이주노동자 들이라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부타씨의 꿈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랑은 틀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꿈 이 보다 멋진 꿈이 어디 있을까?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고, 하고 계실까?
난 잘 알지 못한다 부타씨에게 들은 부분만 조금씩 알고 있을 뿐 하지만 그 조금만 봐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힘드셨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또 한번 놀랄 뿐이랄까?

그리고 부타씨의 경험을 들었을 때는 사귀었던 친구를 보내면서 또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서 까지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서 지내오셨다는 것과 현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부타씨의 얘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어떻게 오는지도 일을 할 때 사고가 나서 다치게 되면 어떻게 하는지도 지금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찾았다. 그 찾은 부분에서는 내가 처음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알게 됬을 때 생각한 것에서 훨씬 발전했다고, 느끼면서 지금 까지 보고, 들은 것들이 전체에서 겨우 한 귀퉁이에 걸칠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수업을 하면서 양쪽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한쪽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를 느꼈고, 그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보게되고 나서 양쪽의 모습을 바라보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45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남팀 렌죠 리뷰

2008/11/21 12:55
posted by 렌죠

남팀 리뷰

 

오늘 우리 팀은 선릉에 테헤란로, 강남과 포이동, 성남에 모란시장 등등을 갔다 왔다.

원래는 미리 답사를 와야 했던 곳이지만 답사를 오지 않아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을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갔던 나는 답사를 오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 즐거움이란 처음 봐서 신기하고, 뭔가 있어 보이고?, 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인데 이 즐거움을 느낀 대신 답사를 오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했던 한번 본 것을 다시 유의 깊게 관찰, 새로운 생각 같은 것을 왜 안했는지 끝나고서야 생각이나 의문을 가졌다. 다시 한 번 가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까? 같은 것 말이다.

 

테헤란로에 갔을 때는 주로 직장인들과 미용실 그리고 밥집이 많이 보였다.

시간이 11시 30분이 됐을 무렵 많은 직장인들이 여러 건물에서 나와 밥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아직 12시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나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런가 생각하고 있을 무렵 미오가 12시가 넘어서 나오면 밥 먹을 자리가 없어진다. 라는 소리를 하셔서 그제야 이해했다.

우리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미용실을 보면서 밤에 저기에 수많은 여자분 들이 들어가서 머리를 손질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들었고, 회사 건물 밑에 당당하게 미용실이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외에 상당한 미용실들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련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강남을 갔을 때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강남에는 스타슈퍼 라는 슈퍼가 있는데 그 슈퍼에는 다른 나라의 식료품 같은 것도 상당 수 팔고 있고, 가격도 다른 마트 같은 곳의 비해서 비싼 편이었던 대다가 많은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스타슈퍼를 한번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강남에서 제일 높은 빌딩 3가지를 봤는데 높은 건물에 유리로 된 듯한 벽을 보면 왠지 쓸데없이 돈을 쓴 거 같기도 한 느낌이 있었고, 버스가 없다는 것을 듣고서 나는 이러면 돈 낭비가 심할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강남을 구경하고, 이제 포이동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포이동은 판자촌이었는데 그 곳에 가자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허름하다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벽에다 그려 논 그림과 강남에 비해 훨씬 낮은 건물들과 거리가 좀 떨어져있음에도 너무나 잘 보이는 강남의 빌딩들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지역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심했고, 심지어 포이동 사람들은 빌딩을 보면서 항상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을 말소 당한 것 마저 서러운데 건너편에는 높은 빌딩들이 당당하게 서 있으니..

이런 생가들을 해서인지 여기서는 중립적인 상태에서 양쪽을 바라보기 보다는 포이동 사람들의 편에 서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란시장에 도착하자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개, 닭, 염소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아저씨 와 아줌마 모란시장에서는 개, 닭, 염소, 고양이, 오골계?, 오리 같은 동물들이 건강식품(?)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처음엔 귀엽고, 신기해서 구경을 하였지만 길을 가면 갈수록 보이는 개고기에서 개의 귀가 남아있는 모습 개 배 가운데에 칼이 꽂혀있는 모습 같은 것을 보면서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모란시장을 따라가도 다른 가게(과일가게 같은?)는 보이지 않고, 똑같은 가게들만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가봤자 똑같은 것 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모란시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애완동물을 파는 가게, 애완용품가게, 마지막으로 강아지 경매장... 바로 밑 또는 건너편or옆 에서는 죽여서 고기로 팔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 애완동물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극과 극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40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버마에서 한국으로 오신지 십년이 되어 가시는 부다씨 와 얘기를 통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 삶을 짧은 시간 이지만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의 이주민들은 100만 명 중 50만이 국제결혼 등을 통해 오신 여성분들이고 나머지 50만은 모두 이주노동자 이다. 그 50만의 이주노동자 중 20만이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못하다. 심지어는 이주노동자들을 범죄 집단 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확실히 잘못된 정보다.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중 동남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선진국 국적의 외국인보다 범죄자 수가 훨씬 적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임금체불과 의료사고를 비롯한 기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고용허가 기간인 3년이 지나고 1달이라는 자진출국 시간을 준 뒤에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고 불시에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있다. 이를 두려워한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결국 사장이 폭력을 일삼든지 임금을 적게 주어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각 나라별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런 불합리한 행위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체포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들

이들의 한국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공장사장들의 태도나 갑작스러운 단속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다. 우리는 유난히 피부색에 민감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도 여행을 온 흑인이나 동남아에서 온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말을 걸거나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 하거나 꺼려한다. 그러나 백인이 말을 걸어오면 그 태도는 정반대다. 이는 정말 웃기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한국인과 외국인을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동남아인들 중에도 그 생김새가 조금 한국인 같고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으면 잘 구분하지 못 한다. 프로젝트 중 봤었던 ‘말해요 챤드라‘에서처럼 네팔사람을 단순히 말이 어설픈 시골에서 온 사람이라 오해하기도 할 것이다. 백인들은 모두 잘사는 선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존중하고 동남아나 서남아 에 서 온 사람들을 우리 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이런 행태들은 점점 다양한 문화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36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광주 비엔날레 리뷰

2008/11/12 00:49
posted by 로이

광주 비엔날레 리뷰

 

인상 깊었던 전시들

박진 영 씨 민주화 항쟁 당시 사진들

나는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촬영해 놓은 영상과 몇 가지 사진들을 통해 광주민주화 항쟁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박진 영 씨의 사진들을 통해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의 모습들을 좀 더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한참 치열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군인들 사이를 뚫고 학교에서 귀가하는 아이   의 모습 담배를 피우는 시위대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이 나의 마음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내가 본 영상과 사진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당시의 시위대의 전체에만 초점이 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서 나는 이렇게 집단으로써 눈에 보이는 치열하고 참혹한 광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의 표정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프랑스인 남자가 초록색 페인트통을 들고 이스라엘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알아듣지 못 할 말로 욕을 하기도 하고 페인트를 지우기도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이 남자가 그리고 다니는 선은 일반적인 페인트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페인트로 땅에 줄이 그어졌을 때에는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뭇거리는 경우도 보였다. 쉽게 넘을 수 있는 선을 그들은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낯선 이가 그어놓은 금 하나도 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우리가 다른 무언가새로운 것을 접할 때 생기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 같았다. 또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이에 있는 벽 같기도 했고.

대운시장

이 전시는 ‘복덕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광주의 한 재래시장에서 열렸다. 재래시장에서 열린 이 전시는 시장에 너무나 잘 융화되었기 때문에 전시들이 시장의 일부분이라고 느껴졌을 정도였다. 또한 재래시장이라는 장소가 전시관에서 긴장하며 작품들을 보았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품들을 볼 때 가끔 이런 질문들이 생긴다. 이게 왜 예술이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등의 의문들 말이다. 나는 이 의문들 때문에 답답하다는 이유로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도나 생각들을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 읽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인가? 광주 비엔날레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다시 보니 작가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작품에 들어가 있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한 것 위주였다. 이 작품들 말고 무언가 추상적이고 머리를 써야 되는 작품들은 나에게 그렇게 큰 무언가를 주지 못했다. 물론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려는 나 자신도 문제가 있으니깐.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현대의 예술 작품들이 시대를 읽고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딱히 예술이라는 분야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함께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이라는 공공장소에 있는 소라모형처럼 서울시와 작가만 즐거운 작품 말고 말이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31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11/12 10:38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나도 박진영씨 작품 인상깊게 봤지. 광주민주화항쟁에서의 사진들.. 로이 표현대로 어떤 메시지가 강렬하게 담겨 있어서 이미 맥락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지. 그 외에도 1전시관에 있었던 무의미성에 대한 사진도 좋았고..사디베닝도 좋았고.
    대운시장에서의 전시는 편안하고 친근해서 좋긴했는데 무언가 강렬한 맛은 없더라고. 오히려 강렬하게 이미지가 남았던건 판매대 위에 줄지어 늘어선 돼지머리와 반짝반짝 빛나던 생선들, 복고적인 색채의 옷들이 꽉들어찬 매장과 진열장.. 이런 것들이었어. 만약 이런 것들이 시장 점포가 아니라 비엔날레 전시관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것을 예술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었어.
    그리고 로이의 질문에 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근대(모던)라고 부르던 시기에는 이 세상이(정확히는 서양이) 합리성을 강조하던 시대였지. 예술 역시도 합리적인 구조와 서사가 지배하던 시기였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여기에 지치기 시작했지. 합리성에 말이지.. 그래서 근대를 넘어서 현대(혹은 후기 근대, 포스트 모던)로 오면 합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그냥 Feel이 중요해진거지.. 그래서 그런 작품을 '이해'를 하기엔 점점 난해해지는 것이 사실이야. 그냥 영감을 덩어리 채로 받는다는 느낌이랄까..

    얼마전에 미투에 이런글이 올라왔었는데, 어느 뮤지션에게 그 사람이 만든 어느 음악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대.
    "그게 말로 설명될 것 같았으면 음악으로 안 만들었지."
  2. 그림자
    2008/11/12 16:2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청계천 소라모형 서울시만 작가만 즐겁다는거 공감 평소에 청계천지나가면 그게 왜있나싶어요진짜!!
  3. 2008/11/12 16:42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포스트모던이후의 예술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절대로 'feel'이 중요해 지는 미술은 아니예요. 무척 많은 미술크리틱들이 포스트 모던 이후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시도했는데, 지금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말하여 지지요. 1) 서사와 전통의 부활 2) 소수성의 드러남 3)하이브리드(하이브리드가 뭔지는 지난 프로젝트서 이야기했었고) 4) 경계의 와해 등등.

    미술의 역사에서 칸트의 '자율성'이 강조되던 시기의 예술을 모던아트, 즉 근대미술이라고 말하고, 당시의 미술은 세상의 그어떤 사건에도 영향받지 않는 예술만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강조했어요. 때문에 이당시의 미술은 추상이 많고 마치 '임의의 물건'처럼 변해가지요.

    근대 이후의 예술을 미술에서는 포스트 모던 미술로 말하기 보다는 실은 현대미술(동시대미술), 혹은 컨템포러리 아트. 라고 말하지요. 컨템포러리 예술의 영역은 너무나 확장적이고 너무나 경계가 모호해 져서 우리가 추상화를 감상 할 수 있는 한편에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 졌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소위'예술'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왜 세상을 1차적으로만 재현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그 너머의 이야기, 혹은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메세이지일까, 매체일까, 혹은 의미일까 감동일까. 를 의문해 보시길.

    한겹의 차원에서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예술'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을거예요. 우리는 굉장히 여러겹의 차원으로 된 세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현대미술은 그 여러겹의 세계와 그 너머, 이면까지도 낱낱이 들여다 보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답니다.

    예술은 느낌이지... 하는식의 멍청한 결론에 도달해서 만족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고 무책임한 세계와 가벼운 즐거움만을 예술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예술이 취해야할 세상에 대한 입장이나 윤리같은것도 필요치 않을지도 몰라요.

    컨테이너어페어에서 본다는 것이 얼마나 권력적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지요? 조금더 깊게 사고하고 세심하게 보기를 바랍니다.
  4. 2008/11/12 16:43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그리고 우리가 갔던 시장은 대운시장이 아니고, 대인시장!
  5. grow
    2008/11/21 16: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박진영 사진작가님의 사진은 광주항쟁이 아니고, 6월 항쟁사진으로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작가의 나이가 30대후반이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 그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잖아요.
    이건 아니잖아!!

창의서밋리뷰- 반야

2008/10/31 13:21
posted by 로이

창의써밋 리뷰

 

써밋이 시작하기 전 사실 난 창의써밋이라는 행사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서울 청소년 직업 체험센터가 창의센터로 바뀌기 때문에, 요즘에는 창의성이 중요하니까 라는 이유로 이번 행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지, 내가 호스트로써, 어떤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그리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기도 하고, 그만큼 내가 손님은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창의써밋 기간 동안 이래저래 즐거운 일들도 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써밋 기간 동안 준비부족이 여지없이 드러났던 것 같다.

써밋 기간 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창의마켓이었는데 그것도 잘 된 것 같지 않아서 아쉬움뿐이다. 준비하면서 '창의'마켓이라서 어려웠는데 실제로 해보니까 창의마켓의 아이템은 어려운 데 있는 게 아니라 생활에서 내가 필요하거나 내가 잘하는 것으로 재미있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그런 아이템들이 흥행을 이루었다. 나는 이면지를 공책으로 만드는 걸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왔다가셨다. 아쉽게도 대부분 학부모님들이었지만 마켓을 하는 시간동안 여러 생각들이 스쳐갔다. 다음에 만들 때는 어떻게 해야 할 지 머릿속에서 오고갔다.

전체적으로 아쉬운 건 나는 창의마켓이 마치 행사가 있을 때 길놀이를 하면 마을 사람들이 흥에 겨워 판에 들어와 같이 즐기는 것처럼 창의마켓도 우리가 주체적으로 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마켓에 참여해 즐거운 장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잠깐 사람들이 우르르 왔을 때가 있었지만 그 것도 한 순간이었다. 각 나라 학생들은 저녁에 있을 발표준비로 바빴고 옆에 열린 먹을거리 장터로 분위기가 분산되었던 것도 있었다. 이런 저런 이유도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준비와 분위기 조성이 부족했다. 다음 써밋에는 좀 더 재밌는 창의마켓이 열리길 기대한다.

내가 창의써밋을 하면서 인상 깊었던 일은 홍콩창의력학교 학생들은 다들 명함을 가지고 있으면서 보는 사람마다 명함을 나눠주었다. 명함에는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메신저 등이 있는데 그건 다음에도 연락을 취하고 싶다는 적극적인 태도였던 거 같다. 종이에 이메일 주소를 써주는 것 보다 명함을 주면 인상에도 남고 나중에 찾기도 쉽다. 다음 창의써밋 때는 우리도 자신의 명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창의써밋을 하기 전에는 창의성은 나에게 해당 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창의성은 기발하고 새로워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심포지움에서는 창의성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창의성을 다르게 말했다. 창의써밋을 하면서 창의성은 아주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의 불편함에서도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도 있고, 거대한 것이 아닌 사소한 것에서 창의적인 발상이 떠오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한다. 창의써밋을 하기 전과 후의 생각의 변화가 있다면 예전에는 '창의'라고 하면 굉장히 어렵고, 불편하게 다가왔는데, 지금도 창의는 나에게 불편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되는 것이다. 나에게 창의는 갑자기 생각해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생각 속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이렇게 저렇게 조합이 되어서 다른 것이 나오는 게 창의인 것 같다.

이번 써밋도 좋았는데 다음 써밋에는 다른 나라 청소년들 말을 조금이라도 알아듣길 바라며 다음 해를 기대하겠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29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창의워크숍리뷰- 렌죠

2008/10/31 13:17
posted by 로이

워크숍을 끝내고의 느낌은 뒤죽박죽이다. 리뷰를 쓰려니 아직도 중국어랑 영어랑 한국어가 뒤섞여 진행되었던 워크숍 시간이 생각난다.

아침부터 센터 안은 외부인들로 북적였다. 워크숍에서 처음으로 홍콩 창의력학교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내겐 오랜만에 보는 외국인이었고, 영어로 뭐라고 하는데 못 알아들어 곧 머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워크숍은 게임으로 시작했다.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한 게임이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에는 게임을 설명하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다음 워크숍을 위해 게임을 끝내야 해서 좀 아쉬웠다. 게임 룰도 잘 못 이해해서 제대로 하진 못했다. 게임을 하면서도 내내 어색한 웃음만 흘렀지만 나는 그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았다. 그렇지만 게임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역할을 한 것 같지 않다. 홍콩학생들과 친해진 시간은 워크숍 시간 중이었다. 말이 잘 안 통하니까 홍콩학생들이 워크숍시간에 딴 짓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떠들면서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진행하시는 분들은 무지 힘드셨을 것이다.

워크숍에서 진행되었던 것은 동전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것과 어떤 것을 항목을 만들어 어떤 항목이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둘 다 워크숍 참가자의 수학적 기량이 많이 필요한 게 아니고 대부분 컴퓨터가 계산해주는 것이어서 그 것에 대해 부담스럽진 않았다. 나는 워크숍에서 하는 것들이 실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과정들인데 그게 수학적인 과정으로 눈에 보이니까 이해하기 쉬웠다.

그렇지만 내가 영어를 못하니까 영어로 하는 설명을(워크숍에 중요한 부분을 설명해주는 것) 이해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건 영어를 못하는 내가 영어를 더 열심히 해야 하는 부분이지만 사실 홍콩학생들은 알아듣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지루한 표정으로 워크숍에 설렁설렁 참여하는 것을 보니 홍콩 학생들도 이해를 잘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어를 못 알아듣는 사람들을 위해 진행하는 쪽에서 한국어로 설명하면 홍콩학생은 굉장히 뻘쭘하다는 제스처를 취했고 내가 영어를 잘 한다면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 사실 거기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게 좀 미안했다. 홍콩 학생들이 갑자기 중국어를 하면 추측도 안 돼서 저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홍콩 학생들도 우리가 한국어를 하는 동안 그 사람들은 정말 이상한 기분일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홍콩 학생들이 자기 이름이 한국어로 오가면 뭔가 조금 알아듣는 것 같아서 우리가 이야기 한 것에 대해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언어가 안 되니까 답답했고, 나도 답답해서 한국어를 쓰게 되는 상황이 계속 되었다.

워크숍을 하고도 일상적 창의성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워크숍 둘째 날에 했던 것을 일상에서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날 했던 것은 어떤 주제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 5점을 만점으로 항목에 점수를 매겨 만족도를 내는 것을 했었다. 예를 들어 옷을 산다고 했을 때 내가 여태까지 산 여러 옷이 있을 텐데 그 옷에 여러 항목을 만들어 만족도를 매기는 것이다. 내가 옷을 살 때 디자인을 보기도 하고 재봉 상태, 브랜드, 가격 등 여러 가지를 따지면서 살 것인데 워크숍 둘째 날 했던 것을 이용하면 내가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사실 나는 옷을 살 때 디자인을 보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디자인 보다 가격을 중요하게 보는지도 모른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실은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워크숍이 끝난 지금도 3일 동안의 워크숍과 창의성이 연결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에게는 흥미로운 워크숍이었다. 수학은 사칙연산 빼고는 현실과 무슨 관계있는지 몰랐는데 어쩌면 이번 워크숍에서 수학이 생활에서 이렇게 쓰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 같다. 한국어로 이런 워크숍을 다시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다.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센스
Creative Commons License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보낼 주소 :: http://global.haja.net/trackback/528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2008/10/31 19:06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이것은 반야의 창의워크숍A리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