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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얼굴의 황금도시

어느 날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띠리링-’
“여보세요?”
“황금도시로 나와”
‘툭-’

황금도시...

황금도시가 어딘지 몰라서
일단 우리가 항상 만나 놀았던
서울 시내로 나갔다.
한참을 기다려도 친구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둠이 깔렸다.
빛을 낼수 있는 모든
사물들과 건물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이
빛을 발하였고

나는 그 빛 속을 하염없이 걷고
그 빛 속에서 도시의 황금빛 속에서
친구를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허름한 판자촌이 보인다.
가로등 에선 황금색의 불빛이
주위를 비추고 있었고

그 가로등 밑엔
누군가 연신 시계를 보며
누군가 기다리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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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팀-시

2008/11/22 10:51
posted by 로이

똑같은 침대에서 일어나도
똑같은 지하철에 타도
똑같은 일상을 보낸다고 해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제는 다 알아요
당신에게도 남들이 눈치채지
못한 한줄기 빛이 있다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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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팀 렌죠 리뷰

2008/11/21 12:55
posted by 렌죠

남팀 리뷰

 

오늘 우리 팀은 선릉에 테헤란로, 강남과 포이동, 성남에 모란시장 등등을 갔다 왔다.

원래는 미리 답사를 와야 했던 곳이지만 답사를 오지 않아 어디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찍을 것인지 모르는 상태로 갔던 나는 답사를 오지 않아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느꼈다.

그 즐거움이란 처음 봐서 신기하고, 뭔가 있어 보이고?, 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인데 이 즐거움을 느낀 대신 답사를 오지 않아서 라기 보다는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했던 한번 본 것을 다시 유의 깊게 관찰, 새로운 생각 같은 것을 왜 안했는지 끝나고서야 생각이나 의문을 가졌다. 다시 한 번 가면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까? 같은 것 말이다.

 

테헤란로에 갔을 때는 주로 직장인들과 미용실 그리고 밥집이 많이 보였다.

시간이 11시 30분이 됐을 무렵 많은 직장인들이 여러 건물에서 나와 밥집을 찾아 돌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아직 12시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나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런가 생각하고 있을 무렵 미오가 12시가 넘어서 나오면 밥 먹을 자리가 없어진다. 라는 소리를 하셔서 그제야 이해했다.

우리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난 미용실을 보면서 밤에 저기에 수많은 여자분 들이 들어가서 머리를 손질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상상이 되지 않았다. 단지 그렇게 들었고, 회사 건물 밑에 당당하게 미용실이 있는 모습 그리고 그 외에 상당한 미용실들이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련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강남을 갔을 때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강남에는 스타슈퍼 라는 슈퍼가 있는데 그 슈퍼에는 다른 나라의 식료품 같은 것도 상당 수 팔고 있고, 가격도 다른 마트 같은 곳의 비해서 비싼 편이었던 대다가 많은 외국인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스타슈퍼를 한번 돌아보고 밖으로 나와 강남에서 제일 높은 빌딩 3가지를 봤는데 높은 건물에 유리로 된 듯한 벽을 보면 왠지 쓸데없이 돈을 쓴 거 같기도 한 느낌이 있었고, 버스가 없다는 것을 듣고서 나는 이러면 돈 낭비가 심할 뿐이다. 라고 생각했다.

강남을 구경하고, 이제 포이동을 향해서 걸음을 옮겼다. 포이동은 판자촌이었는데 그 곳에 가자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허름하다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 그러고 나서 주변을 살펴보자 많은 사람들이 벽에다 그려 논 그림과 강남에 비해 훨씬 낮은 건물들과 거리가 좀 떨어져있음에도 너무나 잘 보이는 강남의 빌딩들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거리가 그렇게 먼 것도 아닌데 지역의 차이는 극과 극이라 할 정도로 심했고, 심지어 포이동 사람들은 빌딩을 보면서 항상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증을 말소 당한 것 마저 서러운데 건너편에는 높은 빌딩들이 당당하게 서 있으니..

이런 생가들을 해서인지 여기서는 중립적인 상태에서 양쪽을 바라보기 보다는 포이동 사람들의 편에 서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모란시장에 도착하자 가장 처음 보이는 것은 개, 닭, 염소 불을 피우고 몸을 녹이는 아저씨 와 아줌마 모란시장에서는 개, 닭, 염소, 고양이, 오골계?, 오리 같은 동물들이 건강식품(?)으로 판매되고 있었다.

처음엔 귀엽고, 신기해서 구경을 하였지만 길을 가면 갈수록 보이는 개고기에서 개의 귀가 남아있는 모습 개 배 가운데에 칼이 꽂혀있는 모습 같은 것을 보면서 징그럽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모란시장을 따라가도 다른 가게(과일가게 같은?)는 보이지 않고, 똑같은 가게들만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가봤자 똑같은 것 밖에 없다는 말을 듣고, 모란시장에서 밖으로 나가는 길에 보이는 것은 애완동물을 파는 가게, 애완용품가게, 마지막으로 강아지 경매장... 바로 밑 또는 건너편or옆 에서는 죽여서 고기로 팔고, 있는데 그런 곳에서 애완동물 장사를 하는 모습을 보니 극과 극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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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홀로 늙어도 마땅히 행복해야
베스트셀러 ‘화려한 싱글 …’ 지은이 우에노 지즈코 교수


한겨레 한승동 기자



» 우에노 지즈코(60·사진)



‘싱글 노후’ 보장할 사회적 시스템 강조
“미국 의료보험 최악, 한국 따르지 말라”

“나이 들어 혼자 사는 걸 두고 ‘외로우실 텐데’, ‘쓸쓸하실 텐데’ 얘기하는 건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 요즘은 혼자 사는 삶을 스스로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고 있으니 그런 얘기는 쓸데없는 참견이 되고 만다. 이제는 혼자 사는 노후를 지탱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일본에서 10개월 만에 75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 <오히토리사마노 로고>(싱글의 노후)의 지은이 우에노 지즈코(60·사진) 도쿄대 대학원 교수를 16일 서울에서 만났다.

가족없이 홀로 사는 사람들의 노후가 결코 무섭지도, 불행하지도 않고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행복할 수도 있다며, 여생을 의미있게 보내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하는 방법에 관한 사색을 담담하게 펼친 그의 책이 최근 <화려한 싱글, 돌아온 싱글, 언젠간 싱글>이란 제목으로 번역출간됐다. 사회학과 여성학 분야에서 일본을 대표하는 학자인 그는 ‘싱글’ 문제를 사회적 화두로 만든 공로자로 꼽힌다.

그는 죽을 때 아무도 지켜봐 주지 않는 것을 불행이라 여기는 전통관념도 깨야 한다고 말했다. “죽는다는 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고 사람은 결국 혼자 죽는 것이다. 생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싶다거나, 어떻게 떠나보낼 것인가 고민하는 건 살아남은 사람들 쪽의 집착일 것이다. 혼자 살다 보면 혼자 죽을 수도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미국 2년 반, 독일 1년, 멕시코에서 반년 간 생활했다는 그에게 서양체험이 그런 가치관이나 세계관 형성에 영향을 끼쳤느냐고 묻자 “그건 아니다”며 “여성학적 관점에서, 많은 여성 독신 선배들이 가족 도움 없이 친구들끼리 서로 도우며 노후를 보내는 사례들을 취재하다 배우고 깨친 것”이라고 했다.

“일본에서도 나이들면 자식과 손자들에 둘러싸여 지내는 것이 행복이라는 관념이 오랜 세월을 지배했으나 이젠 급속히 사라져 가고 있다. 65살 이상에서 자식과 함께 사는 비율은 1980년 약 70%에서 2006년 44%로 줄었다. 홀로 사는 세대만 16%다. 특히 65살 여성의 55%는 배우자 없이 홀로 살고, 80살 이상 여성은 무려 83%가 싱글이다.”




우에노 교수 자신도 싱글이다. “남자가 싫은 건 아니지만 마누라가 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지금 30대 전반 일본 여성의 약 25%가 결혼을 하지 않는다. 수도권 여성은 그 비율이 30%에 이른다. 2005년 현재 일본인 평균수명은 남성이 78.5살, 여성은 85.5살. 85살 이상의 남녀 비율은 5 대 2. 따라서 21세기 일본이 ‘할머니들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당연해 뵌다.

그는 “당사자 주권”을 강조하는 자신의 싱글 예찬(?)이 가능해진 건 2000년부터 시작된 전국민보험(國民皆保險, 개호보험) 덕이 크다며 지난 8년간 그 문제를 꾸준히 천착해왔다고 말했다. 이와나미 서점에서 나온 6권짜리 공저 <케어, 그 사상과 실천> 등도 그런 노력의 산물이다. 건강보험에 이어 개호보험이 시행된 것은 “기적 같은 일이다, 미국에선 불가능하다”고 단언한 그는 “미국 방식은 최악의 길이니 한국은 절대 미국을 따라가선 안 된다”고 거듭 얘기했다.

15일 서울에서 열린 ‘신자유주의와 성(젠더) 평등’ 주제의 한국여성학회 회의에서 그가 강조한 것도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를 따라가선 안 된다는 것, 시장의 한계를 해결하는 길은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유럽식 사회민주주적 재분배 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사진 이덴슬리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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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꿈을 꾸는가?
무엇을 위한 꿈인가?
반복되는 잿빛 풍경
반복되는 일상
나라는 존재는
어느새 상실되고 잊혀 진다
모두가 똑같은 삶을 살고
똑같은 곳을 볼 수 밖에
더이상 무엇을 바라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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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ve my city

2008/11/18 13:49
posted by 로이

Save my city

동쪽팀
11/17 답사리뷰

덕소: 낡은 빌라/주택+ 고급 아파트
백화점이 없어 한적하다.
뉴타운 홍보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시 외곽에 위치했는데, 도시가 쓰러져가는 것 같으면서도 다시 재생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주거단지의 차이가 심했다.
고급아파트, 주택이 많고 차이가 심함.

구리: 위성도시 - 서울의 역할이자 기능을 하기 위함.
인구집중 분산 추진.
허나 사람이 적어 휑하다.
청과물시장은 한적하다(아침에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추정됨).
서울인구 분산의 역할. 높은 아파트. 횡한 느낌. 도매시장.

상계: 재개발. 뉴타운
과거는 어떠했는가.
다른 지역과 너무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등포 같은 곳과 땅값의 차이가 심한 이유는?
88년 상계동올림픽 이후 과거의 흔적들이 모두 사라져 버렸다.

영상 아이디어
비슷한 동네들. 혹은 풍경들.
->획일화되는 도시의 모습.
결국 우리가 지키고 싶은 것은 획일화 되지 않는 도시인가.
=>도시의 특성을  save

형식  
시를 토대로 영상 제작.
각자 시 한편 써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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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에서 한국으로 오신지 십년이 되어 가시는 부다씨 와 얘기를 통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에서 삶을 짧은 시간 이지만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한국의 이주민들은 100만 명 중 50만이 국제결혼 등을 통해 오신 여성분들이고 나머지 50만은 모두 이주노동자 이다. 그 50만의 이주노동자 중 20만이 불법체류자라고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이주노동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바라보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의 시선은 좋지 못하다. 심지어는 이주노동자들을 범죄 집단 이라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확실히 잘못된 정보다. 법무부의 통계에 따르면 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 중 동남아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 선진국 국적의 외국인보다 범죄자 수가 훨씬 적다고 한다. 이들은 오히려 임금체불과 의료사고를 비롯한 기타 범죄의 표적이 되고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고용허가 기간인 3년이 지나고 1달이라는 자진출국 시간을 준 뒤에 모든 이주노동자들을 불법체류자로 간주하고 불시에 마구잡이로 연행하고 있다. 이를 두려워한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결국 사장이 폭력을 일삼든지 임금을 적게 주어도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 최근에는 시민단체와 각 나라별 커뮤니티 등을 통해 이런 불합리한 행위에 대한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불법체류 노동자들은 체포되면 고향으로 돌아가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

 피부색에 대한 편견들

이들의 한국 생활을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공장사장들의 태도나 갑작스러운 단속도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한국 사람들의 편견이다. 우리는 유난히 피부색에 민감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을 제외하고도 여행을 온 흑인이나 동남아에서 온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말을 걸거나하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려워 하거나 꺼려한다. 그러나 백인이 말을 걸어오면 그 태도는 정반대다. 이는 정말 웃기는 일이다. 사실 우리는 한국인과 외국인을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동남아인들 중에도 그 생김새가 조금 한국인 같고 아무말도 하고 있지 않으면 잘 구분하지 못 한다. 프로젝트 중 봤었던 ‘말해요 챤드라‘에서처럼 네팔사람을 단순히 말이 어설픈 시골에서 온 사람이라 오해하기도 할 것이다. 백인들은 모두 잘사는 선진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존중하고 동남아나 서남아 에 서 온 사람들을 우리 보다 못산다는 이유로 무시하는 이런 행태들은 점점 다양한 문화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이루어 가고 있는 지금의 사회 발전에 걸림돌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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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4일 Save my city

2008/11/14 19:08
posted by 반야

11.14

전체 컨셉


save my city

도시, 공간, 이주, 인권, 세계화, 시대, 시간, 한국인의 양면성, 소비주의.


-이사지도

도시속의 사람들은 이주민이다.

로이: 상계동. 중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아파트로 이사함. 그 다음에 중학교 3학년 (지금) 연립주택으로 이사.

아파트는 고립된 느낌이었다. 주택보다 많은 사람이 살고 있지만.

주택은 다른 사람과 많이 알 수 있었지만 아파트에서는 통장님이 돈 받아 가는 것만 있었다. 교류가 없다. 다시 주택으로 갔다. 밑에 집에 이모가 사셔서 잘 지내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른다. 시대의 흐름이 있었던 것 같다.

산: 잠깐 살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세나 월세로 사니까 곧 이주할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곳에 터를 잡는 게 아닌 것이다.

로이: 다음번에는 서로 얼굴을 알고 음식도 나눠먹는. 이웃 간에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

산골마을 같다.



? 본인이 이웃과 가까워지려고 하는 노력이 없는 게 아닌지?


렌죠: 출생지는 잘 모르고 어렸을 때 안양 중앙시장 부근에서 살다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쯤 이사를 갔다. 왜냐면 월세가 다 되어서 나갔음. 처음으로 이사 간 것은 주택이었다. 처음에는 마음에 안 들었다. 중앙시장에서 오래 살아서 정이 들어서 다른 곳으로 가기 싫었다.

아파트로 이사를 감. 나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었는데 주변에 모든 시설이 있어서 편리하고 학교랑 가까웠다. 아파트에도 아는 사람이 많았다.

아파트에 살기 전 주변 근처 주택으로 이사를 갔다. 작은 마당이 있었고, 고물상이 있었음.

이웃과 가깝게 지냈을 때는 중앙시장근처에서 살았을 때 밖에 없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이 많아서 좋았다. 다음번에도 중앙시장 근처에서 살고 싶다. 아는 사람이 많고, 어렸을 때 추억이 있고, 시끌벅적하고, 공기가 좋은.


산: 대전에서 태어났지만 군산에서 살았다. 부모님께서 운동하실 때라서 숨어 살았었다고 한다. 그러다 아파트로 이사를 가서 5살부터 계속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대전에서 할머니의 병간호를 하기위해 3달 살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금산간디. 해방학기 제천 푸른누리. 시골에 전기와 전화만 들어오는 곳에서 농사지으면서 한달 살았다. 간디학교 돌아와서 산청에 흙집짓는 사람에게 가서 2달 정도 있었음.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경기도 광주에서 하자 다니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영등포 시장으로 이사 옴.

교육과 배움으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이주를 함. 앞으로는 내가 배울 것이 가깝고, 많은 도시에서 살고 싶다.


반야: 전남여수에서 태어났고 살기는 어려서부터 경기도 부천에서 원종동에 살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부천 중동 신도시에서 살았다. 백화점 많고 건물 많고 아파트가 많았던 도시였다. 원종동에서는 대부분의 아파트가 5층이고 아파트도 거의 5층짜리 빌라처럼 보였다.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친해서 이사를 하기 싫었다. 중동 신도시에서는 편의시설도 가까웠고 학교도 가까웠다. 교육 때문에 중동으로 이사한 것이다. 초등학교 6학년 여수로 가게 되었다. 집안사정으로 여수로 갔다. 어머님의 고향이기 때문에 간 이유도 있다. 

6개월 정도 여수에 살다 남원으로 가게 되었다. 지리산에서 중학교시절을 보내고 지금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시골에 가서 살 것 같다. 친자연적으로 살고 싶어서, 추억과 뿌리가 담겨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아마 함평?  

10대들 중 왜 이사를 하는지에 대한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간 사람들도 많다.
;
이주, 이사의 이유

도시가 커지면서 집을 넓혀가는 것 그런 것을 따라 다니는 것. 부모님의 직장, 교육문제  
이유 없는 이주, 이사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꼬미: 이사는 3,4번 했다. 성남에서 태어났지만 성남에 대한 기억은 없고, 가족이 시골에 살고 싶다고 하여 옥천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강릉으로 이사. 6학년 때까지 강릉 교동에서 살았다. 강릉으로 이사 간 것은 가족이 이사를 해서 가게 되었다. 조금 더 좋은 도시로 이사 간다는 것만 좋았다. 강릉에서 중학교를 시골로 갔다. 서울에서 강남으로 가게 된 이유는 동생 공부와 직업 때문에. 어머님 직업이 옮겨졌음.

서울을 문화시설 같은 게 많아서 동경했었는데 살다보니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중학교가 있었던 완주에서 살고 싶다.


-좀 더 살을 붙여야 함.


기획의도: 도시 안에서 여러 이유로 많은 이주나 이사를 하게 되는데 이사, 이주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맵핑을 통해 현대 사회에 많은 이주나 이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형식에 대한 이야기.

--------------------------------------------------------------------

이주노동자.

기획의도

세계화. 조화롭게 사는 것. -

너무 다양한 인종, 문화권의 사람들이 한국으로 이주하고 있다.

살아왔던 문화, 시간이 다르다. 조화롭게 사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그동안 우리는 타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이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 그들을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인정해야하지 않을까.....

- 다른 나라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지 않을까?

- 같이 잘 사는 것.

- 미국인, 백인 이면 잘해주고 이런 식의 편견들이 이주민들 특히 이주노동자들이 사회 속    에 잘 융합시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 정부의 법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 똑같이 경제활동을 하고 소비를 하는 사람들인데 정부와 우리들은 후진국에서 온 이주노    동자들에게 우월한 위치에서 바라보고 그들을 착취하고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백     인들에게는 부러운 눈빛을 보낸다.


그렇다면  __도시여야 한다?

save

다문화? 다인종?

-우월의식

-편견

-사회적 융합




형식:

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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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부수고 퇴로 막고 ‘토끼몰이
사상 초유 법무부·경찰 이주노동자 단속


한겨레 최원형 기자 김지은 기자



» 필리핀이주노동자공동체연합, 민노총 조합원들이 17일 오후 서울 종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고용허가제 4년 규탄! 야만적 단속추방 중단과 이주노동자 노동권 보장 촉구 결의대회'를 열어 미등록 이주노동자에 대한 단속 중단과 합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마석가구공단·청산농장 대상 110명 붙잡아
“미등록자 3만명 줄이겠다” 법무부 ‘본보기’

정부가 올해 안에 미등록 이주노동자 2만명을 줄이겠다며 12일 경찰 병력까지 동원해 경기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벌였다. 이에 “인권을 침해하는 강제 단속으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싹쓸이하려 한다”는 반발이 일고 있다.

법무부와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등의 말을 종합하면, 법무부는 이날 출입국사무소 직원과 경찰 280여명을 동원해 마석가구공단과 경기 연천군 청산공장 등 경기도 일원에서 이주노동자 130여명을 붙잡는 등 전국적인 단속을 펼쳤다. 이주노동자 단속에 법무부·경찰 합동 작전까지 벌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법무부는 밝혔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몰려 있는 마석가구공단에서 오전 10시께부터 2시간 가량 진행된 단속은 “군사작전을 방불케 했다”고 이주노동자 단체들은 전했다. 경찰 버스가 공단 진입로를 막고 경찰이 공단 안 골목마다 지키는 가운데, 검은 제복 차림의 단속반원들이 10여명씩 모둠을 지어 공장과 집을 샅샅이 수색했다. 공장 기숙사에 있던 방글라데시인 오닉(32·가명)은 “여기저기 방문을 부수고 들어가 사람을 끌어내는 소리가 들렸다”며 “잠긴 문에 소파를 덧대어 간신히 피했다”고 말했다. 현장에 있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샬롬의 집’ 조은우 활동가는 “퇴로를 막고 눈에 띄는 외국인은 무조건 잡아갔으며, 단속반원이 신분을 밝히거나 이주노동자의 신분을 확인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전했다. 카메룬인 노동자가 단속을 피해 담을 넘다 발목이 부러지는 등 단속 과정에서 5명이 다쳤다고 이주노동자 단체는 전했다.

법무부는 “불법 체류 외국인 밀집지역이 슬럼화되고 외국인 범죄의 온상이 되는 등 치안 부재 현상이 심화돼 대규모 집중 단속을 벌였다”며 “경찰 병력은 단속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 배치했다”고 밝혔다. 법무부와 노동부는 지난 9월 대통령 주재 국가경쟁력강화회의에서 “5년 안에 불법 체류 외국인을 국내 체류 외국인의 10% 이내(현재 19.3%)로 줄이고, 현재 22만명인 불법 체류 외국인을 올해 안에 20만명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내놓은 바 있다.

그러나 사업장이나 거주지에 들이닥쳐 불심 검문을 하는 ‘토끼몰이식’ 단속은 이를 피하려는 이주노동자의 부상과 죽음 등으로 이어지며 ‘인권침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5년 “이주노동자 단속·보호·구금 때, 형사사법 절차에 준하는 절차 제도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외국인 이주노동운동협의회는 이날 오후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강압적인 대규모 단속으로 싹쓸이하는 방법으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살인적인 강제 단속 추방 정책을 즉각 중단하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최원형 김지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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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3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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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그인을 아직도 못하고 있어서 업로드가 안되네.. 단지가 마침 올리셔서 이 글 밑에 이주노동자에 대한 몇가지 기사 링크 걸어 놓을게.

    http://www.vop.co.kr/A00000229157.html (토끼몰이식 불법체류자 검거)

    http://www.vop.co.kr/A00000229215.html (이주노동자 인권보장)

    http://www.vop.co.kr/A00000224769.html ( 강제추방 정책이 이주노동자 죽음으로 내몰아)

    첫번째 기사를 읽다보니 법무부에서 이주노동자를 쫓아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더라고, 정말 어이가 없더라. 뭔가 심하게 꼬이고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중에 읽고 나서 같이 이야기해보면 좋을 거 같아. 내가 어이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

11/12 글로벌학교 모임

2008/11/12 14:28
posted by 반야
 

save my city.
- 이사지도
- 맵핑.

도시 속의 사람들은 이주민들이다.

도시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


잊혀진 것들-> 지키고 싶은 모습.

도시에 어떤 모습이 있었나?

설문지. 당신이 기억하는 서울은?


11.12

내가 살고 싶은 장소에서 키워드를 뽑아보자.
꼬미 - 모두의 공간
렌죠 - 여유
로이 - 평등
산   - 다양성을 인정, 자연과 인간, 노동자와 자본가의 (정당한, 건강한) 공존
반야 - 모두가 편리하게 누릴 권리. 어떠한 장소에 살고 있는 사람을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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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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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슬 재밌어 지려고 하는 것 같은데?
    내일 오전 부다씨와의 만남에서도 질문들이 많이 터져나오면 좋겠다.

광주 비엔날레 리뷰

2008/11/12 00:49
posted by 로이

광주 비엔날레 리뷰

 

인상 깊었던 전시들

박진 영 씨 민주화 항쟁 당시 사진들

나는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촬영해 놓은 영상과 몇 가지 사진들을 통해 광주민주화 항쟁의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이 박진 영 씨의 사진들을 통해 그 당시 광주 시민들의 모습들을 좀 더 상세하게 볼 수 있었다. 한참 치열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음에도 군인들 사이를 뚫고 학교에서 귀가하는 아이   의 모습 담배를 피우는 시위대의 모습들을 담은 사진들이 나의 마음을 더 뭉클하게 만들었다. 내가 본 영상과 사진에는 광주 민주화 항쟁당시의 시위대의 전체에만 초점이 가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에서 나는 이렇게 집단으로써 눈에 보이는 치열하고 참혹한 광경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의 표정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어 좋았다.

한 프랑스인 남자가 초록색 페인트통을 들고 이스라엘을 지나간다. 사람들은 이 남자에게 알아듣지 못 할 말로 욕을 하기도 하고 페인트를 지우기도 하며 신기하게 쳐다보기도 한다. 이 남자가 그리고 다니는 선은 일반적인 페인트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페인트로 땅에 줄이 그어졌을 때에는 사람들이 반대방향으로 가기 전에 잠시 머뭇거리는 경우도 보였다. 쉽게 넘을 수 있는 선을 그들은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 낯선 이가 그어놓은 금 하나도 넘지 못하는 것이 마치 우리가 다른 무언가새로운 것을 접할 때 생기는 두려움을 표현한 것 같았다. 또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사이에 있는 벽 같기도 했고.

대운시장

이 전시는 ‘복덕방’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광주의 한 재래시장에서 열렸다. 재래시장에서 열린 이 전시는 시장에 너무나 잘 융화되었기 때문에 전시들이 시장의 일부분이라고 느껴졌을 정도였다. 또한 재래시장이라는 장소가 전시관에서 긴장하며 작품들을 보았던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작품들을 볼 때 가끔 이런 질문들이 생긴다. 이게 왜 예술이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등의 의문들 말이다. 나는 이 의문들 때문에 답답하다는 이유로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의도나 생각들을 읽는 것을 힘들어한다. 읽으려는 노력이 부족한 것인가? 광주 비엔날레에서 내가 인상 깊게 보았던 작품들을 다시 보니 작가의 의도가 직접적으로 작품에 들어가 있고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기록한 것 위주였다. 이 작품들 말고 무언가 추상적이고 머리를 써야 되는 작품들은 나에게 그렇게 큰 무언가를 주지 못했다. 물론 작품을 만든 작가들이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 작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려는 나 자신도 문제가 있으니깐.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런 생각도 든다. 현대의 예술 작품들이 시대를 읽고 있고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딱히 예술이라는 분야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이라도 작품을 통해 함께 의사소통 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청계천이라는 공공장소에 있는 소라모형처럼 서울시와 작가만 즐거운 작품 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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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1/12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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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도 박진영씨 작품 인상깊게 봤지. 광주민주화항쟁에서의 사진들.. 로이 표현대로 어떤 메시지가 강렬하게 담겨 있어서 이미 맥락을 알고 있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작품이었지. 그 외에도 1전시관에 있었던 무의미성에 대한 사진도 좋았고..사디베닝도 좋았고.
    대운시장에서의 전시는 편안하고 친근해서 좋긴했는데 무언가 강렬한 맛은 없더라고. 오히려 강렬하게 이미지가 남았던건 판매대 위에 줄지어 늘어선 돼지머리와 반짝반짝 빛나던 생선들, 복고적인 색채의 옷들이 꽉들어찬 매장과 진열장.. 이런 것들이었어. 만약 이런 것들이 시장 점포가 아니라 비엔날레 전시관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이것을 예술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싶었어.
    그리고 로이의 질문에 답이 될지는 모르겠는데.. 우리가 근대(모던)라고 부르던 시기에는 이 세상이(정확히는 서양이) 합리성을 강조하던 시대였지. 예술 역시도 합리적인 구조와 서사가 지배하던 시기였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보니 어느덧 사람들이 여기에 지치기 시작했지. 합리성에 말이지.. 그래서 근대를 넘어서 현대(혹은 후기 근대, 포스트 모던)로 오면 합리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그냥 Feel이 중요해진거지.. 그래서 그런 작품을 '이해'를 하기엔 점점 난해해지는 것이 사실이야. 그냥 영감을 덩어리 채로 받는다는 느낌이랄까..

    얼마전에 미투에 이런글이 올라왔었는데, 어느 뮤지션에게 그 사람이 만든 어느 음악의 의미를 설명해달라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했대.
    "그게 말로 설명될 것 같았으면 음악으로 안 만들었지."
  2. 그림자
    2008/11/12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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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천 소라모형 서울시만 작가만 즐겁다는거 공감 평소에 청계천지나가면 그게 왜있나싶어요진짜!!
  3. 2008/11/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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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이후의 예술을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절대로 'feel'이 중요해 지는 미술은 아니예요. 무척 많은 미술크리틱들이 포스트 모던 이후의 예술에 대한 정의를 시도했는데, 지금은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들로 말하여 지지요. 1) 서사와 전통의 부활 2) 소수성의 드러남 3)하이브리드(하이브리드가 뭔지는 지난 프로젝트서 이야기했었고) 4) 경계의 와해 등등.

    미술의 역사에서 칸트의 '자율성'이 강조되던 시기의 예술을 모던아트, 즉 근대미술이라고 말하고, 당시의 미술은 세상의 그어떤 사건에도 영향받지 않는 예술만의 독자성과 순수성을 강조했어요. 때문에 이당시의 미술은 추상이 많고 마치 '임의의 물건'처럼 변해가지요.

    근대 이후의 예술을 미술에서는 포스트 모던 미술로 말하기 보다는 실은 현대미술(동시대미술), 혹은 컨템포러리 아트. 라고 말하지요. 컨템포러리 예술의 영역은 너무나 확장적이고 너무나 경계가 모호해 져서 우리가 추상화를 감상 할 수 있는 한편에서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는 것이 가능해 졌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특성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소위'예술'이다라고 부르는 것은 왜 세상을 1차적으로만 재현하거나 기록하지 않고, 그 너머의 이야기, 혹은 그 이면의 이야기들을 모호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메세이지일까, 매체일까, 혹은 의미일까 감동일까. 를 의문해 보시길.

    한겹의 차원에서만 이야기 할 수 밖에 없다면, 우리는 '예술'에 대해 말할 필요도 없을거예요. 우리는 굉장히 여러겹의 차원으로 된 세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고, 현대미술은 그 여러겹의 세계와 그 너머, 이면까지도 낱낱이 들여다 보려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의지와 인간에 대한 질문들이 항상 포함되어 있답니다.

    예술은 느낌이지... 하는식의 멍청한 결론에 도달해서 만족한다면, 우리는 참으로 어리석고 무책임한 세계와 가벼운 즐거움만을 예술이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예술이 취해야할 세상에 대한 입장이나 윤리같은것도 필요치 않을지도 몰라요.

    컨테이너어페어에서 본다는 것이 얼마나 권력적인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적이 있지요? 조금더 깊게 사고하고 세심하게 보기를 바랍니다.
  4. 2008/11/1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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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리가 갔던 시장은 대운시장이 아니고, 대인시장!
  5. grow
    2008/11/2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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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진영 사진작가님의 사진은 광주항쟁이 아니고, 6월 항쟁사진으로 알고 있는데..
    왜냐하면 작가의 나이가 30대후반이니까, 초등학교 1학년이 그런 사진을 찍을 수는 없잖아요.
    이건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