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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학교 리뷰

2008/12/09 13:44
posted by 반야
 

글로벌학교

산: 나는 이번학기 동안 답답했다. 나의 관심사만 이야기 한 것 같다.

렌죠: 나의 의견을 이야기 하는 게 잘 안되었고, 미숙한 것 같았다. 감이 잘 안잡히는 것 같다.

꼬미: 팀별로 활동하는 것 밖에 없었고, 크게 한 프로젝트가 없어서 아쉬웠다. 나에게 있어서는 적응된 것 같았다.

반야: 학기 초에는 뭐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했었고 길찾기 때 가지고 있었던 글로벌 학교의 모습과 달랐다. 이번학기는 되게 설렁설렁하게 지낸 것 같다.

산: 난 지난 학기 투어를 하고 싶지 않았다. 팀원들이 새로워지면서 뭔가를 잡고 가야 하는데 오래 걸린 것 같다. 평생학습축제 준비하면서 팀 색깔이 나왔던 것 같다. 지난 학기는 여행이었다면 이번학기는 한가지 키워드를 잡는 게 늦었던 것 같다. 좀 더 뚜렷하게 잡고 갔다면...

로이: 혼란스러운 학기였다. 일단 트랜짓이라고 했을 때 다른 팀과 섞여서 했던 것이 많다. 게으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어제 전시를 보면서 우리끼리의 프로젝트를 조직해서 재미있게 할 수 있었던 것도 있을 것 같다. 팀장이었고 팀원들에게 제시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

렌죠: 로이는 주니어 마지막인데 큰 프로젝트가 없어서 아쉬운 게 많았을 것 같다.

로이: 다음 학기에는 유동적으로 움직이고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

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는 됐었는데 한가지를 잡고 끌고 가는 힘이 부족했다.

학기동안 렌죠가 아쉬웠다. 아직 감을 잡지 못했다고 팀과 소통이 적었던 것이.

로이: 글로벌 학교는 장소를 통해서 사회를 읽는 다고 생각했는데 그 부분에서는 이번학기에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컨테이너프로젝트가 중심이었고, 계속 사회를 읽는 느낌.

하면서 어땠는지?

꼬미: 컨테이너나 인문학이나 관심 없는 것에 대해 알게 되어서 좋았다. 내가 사는 장소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되어서 집사고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배우다 보면 또 아닌 것 같다. 잘사는 사람은 잘 살고 못사는 사람은 못사는 게 이상하다. 배우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것의 괴리감.

로이: 글로벌학교에 대해서 계속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지금은 내가 어떻게 살게 될지 자신이 없다. 글로벌학교의 이번 학기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계속 하게 되는 학기였다. 한 면만 보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

꼬미: 배우면서 한 쪽으로 치우쳐서 보게 되는 것 같아 고민스러웠다.

로이: 여러 면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 좋았을 것 같다.

산: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시선을 보기 위해 글로벌학교를 하는데 다른 사람의견이 없으니까 내 관점만 이야기 되는 것 같다.

로이: 이동학습을 6개월 동안 준비하고 나갔는데 관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렌죠: 요리 스튜디오도 끝났고 생각 중. 고민된다. 이번하기에 아쉬웠던 것이 있고, 팀에서 한 게 없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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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리뷰

2008/12/06 09:32
posted by 로이

마석리뷰

컨테이너 어페어를 통해 인연을 맺게 된 조지은씨의 제안으로 마석을 방문하게 되었다. 마석의 첫 느낌은 스산함과 고요함 이었다. 무허가로 지어진 공장들과 집들 버려진 공장들 그 리고 어색하게 서있는 아파트 한 동이 그곳을 정말 사람이 살지 않는 버려진 공간처럼 만들고 있었다. 가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외국인 노동자들만이 그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낼 뿐 이였다.

토크쇼

토크쇼는 마석의 이주노동자 분들이 살고 계시는 기숙사 뒤쪽에 있는 공장에서 진행 되었다. 조지은씨가 질문을 하시고 네팔과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이주 노동자 분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질문에 답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 되었다. 마석에는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분들이 살고 있고 주로 친구나 가족들이 이곳을 추천해서 왔다고 한다. 그동안 마석에서는 정부의 단속이 심하지 않았고 마석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그들을 크게 경계하지 않아 살기가 참 편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무자비한 단속이 있은 후 외국인노동자들은 거의 모든 시간을 집안에서만 보낸다고 했다. 그밖에 이분들이 이주노동을 목적으로 다른 곳이 아닌 마석에 온 이유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위주로 얘기들이 진행되었다.

 토크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그들이 이 마석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나 다른 지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느끼는 감정과는 사뭇 다른 듯 보였다. 비슷한 환경에 있는 다국적, 다인종의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대모여 하나의 마을을 이루다 보니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자연스레 마석이라는 장소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진 것이다. 어떤 이는 마석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만들이 모여 형성된 슬럼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마석이라는 곳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한국의 어떤 도시나 장소보다도 더 편안하고 안심할 수 있는 슬럼이 아닌 제 2의 고향처럼 보였다.

마석이란 곳이 이주노동자 분들에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마석의 주민들 때문 일 것이다. 마을의 주민들은 이주노동자들을 그다지 경계하지 않는다. 이는 물론 자신들의 생존권을 위해서도 있겠지만 이런 이유가 이주노동자들이 마석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이런 모습을 보니 마석이라는 동네에는 자본에 의한 계층이 없는 듯 보였다. 대다수의 이주노동자 분들이나 마석의 주민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를 의지하며 소탈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결국 외부의 돈 많은 사람들과 정부이다. 정부는 마석을 재개발지역으로 선정했다. 마석의 건물들은 대부분 무허가 건물이기 때문에 보상금도 받지 못한체 쫓겨 날 수 있는 상황이다. 물론 이주 노동자들은 보상금은 꿈꾸지도 못하고 자본에 의해 강제 이주를 겪게 될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결국 자본, 돈이라는 것에 묶여있는 존재들일 뿐이다. 돈을 더 많이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본에 의한 계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 서글픈 사실은 이 자본에 의해 만들어진 계층은 전세계 어디서든 만들어져 있다는 일이다.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나’라는 사람조차도 돈이나 자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노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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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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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대대학원신문56호> 도현주[i]_ 타자들의 이웃




    ‘미술적’인 행위들이 우리의 비루한 삶에 끼어들거나 관계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은 어디까지 일까? 미술, 혹은 예술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행위의 주관자인 미술가/예술가는 어디에 자신을 위치 지어야 하는 것일까? 최근 한국 미술계를 점령하다시피 한 ‘공공미술’, 혹은 ‘미술의 공공성’에 관한 수많은 논의와 담론들은 이러한 질문에 응답하려는 부단한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종 잘못 이해된 ‘손쉬운’ 전략들이 난무하기도 하는 최근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들은 특정한 지역을 선택해 소위 ‘문화적 소외 지역’이라는 일방적인 호명을 일삼고, 장소에 대한 이해나 맥락이 제거된 조악한 조형물 설치와 벽화 그리기 등의 ‘환경미화/정화’ 에 급급하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공공미술은 어떻게 예술과 삶이 관계하며 소통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단히 성찰하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한 예술적 매개자이기도 하다.



    이러한 공공미술에 대한 논의들 사이에서 우리는 작가 도현주를 만날 수 있다. 그녀는 한 사람의 미술가 일뿐만 아니라,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기획자이자 프로젝트 매니저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그녀가 진행하는 작업이 기반하는 특정한 커뮤니티들의 ‘이웃’으로 존재하면서 공공미술이 정말로 문제 삼아야 할 것들을 고민한다. 도현주의 작업이 진행되는 장소는 주로 한국사회의 곳곳에 존재하는 과도한 근대적 욕망의 잉여로 남아있는 기이한 디아스포라적 공간들이다. 그 곳은 수 차례에 걸쳐 기억을 봉인 당하면서 결코 역사에 기입되지 않는 타자들의 (비)장소로 남겨진 곳들이다. 도현주는 그러한 지역의 특성을 사회정치적인 맥락에서 차근차근 읽어내고 연구하면서 ‘과정’이며 ‘태도’로서의 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해 나간다.



    그 중에서도, 마석의 가구단지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일하며 거주하는 네팔인 커뮤니티와 함께 진행한 <마석 이야기>(2006-2007)[ii]는 도현주의 예술적인 관심을 잘 드러내주면서 ‘공공미술’의 한 패러다임을 제안한 의미 있는 기획으로 꼽을 수 있다. 마석은 1960년경에는 한센인들의 주거가 이루어졌고, 1990년경부터는 국내 최대의 가구단지가 조성되었지만, 현재에는 이 지역의 30퍼센트 이상이 아파트단지 조성의 명목으로 개발 중에 있다. 가구공장의 3D노동력을 메우고 있는 네팔인 이주노동자들이 이 지역 안에서 일종의 집성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 지역의 개발 전망 내에서 이들 네팔인 커뮤니티에 대한 고려를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도현주는 그녀의 몇몇 동료들과 팀을 이루어 이 마석지역의 네팔인 커뮤니티와 접촉하였고, 그녀는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그룹에 주목한다. 비 장소화된 공간의 타자화된 사람들, 그리고 그 내부에서도 침묵하거나 주변으로 물러나 있는 여성이주민들과 이웃하기 위해 도현주가 시도한 것은 그녀들과 모여 앉아 뜨개질을 하며 수다를 떠는 <손바닥 워크숍>이었다. 축구경기 한번으로도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남성들과는 달리, 여성들을 모이게 하고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한 결과였다.



    그러나 작가는 점차 집단적이고 내재적이며 전체주의적인 ‘공동체’가 이 “여성”들에게 과연 필요한 것인지를 의문하게 된다. 작가는 프로젝트 진행일지를 통해 하루하루를 기록하지만, 실은 그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나날이 벌어진 사건과 사고들이라기 보다는 이 여성들과 이루어가는 공동체와 소통에 대한 거듭되는 재정의일 것이다. 작가는 여성 이주민들의 서툰 한국어를 더 집중해 듣게 되면서, 그녀들의 정신적인 불안이 몸의 병으로 기어나올 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곳으로 접속해 들어가면서 비로서 어떤 공동의 경험을 나누고, 공공의 시간을 얻게 된다. 모리스 블랑쇼가 전했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즉 공동체를 가지지 못한 이들의 “공동체 없는 공동체”를 생성해 내는 순간이다. 타인과 이웃함으로써 생겨난 보이지 않는 공유의 공간이야말로 도현주가 얻어낸 ‘공공성’의 비밀일지도 모른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약 1년여에 걸쳐 진행된 <부동산 프로젝트>[iii]에서 작가는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iv] 라는 간판이 걸린 폐허가 된 작은 공간을 발견하고 경험했었다. 이 프로젝트의 반쪽 부분이었던 가리봉지역 역시 경제성장의 편집증적인 욕망이 불러들였던 수많은 공장 노동자들의 삶의 기억들이 미끄러지며 사라진 곳, 이후엔 전지구적 자본의 이동을 따라 몰려든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집성촌이 되었으며, 이제는 뉴타운 정책의 바람에 힘입은 개발이라는 이름 하에 그들의 기억은 축적되지도 기입되지도 않은 채 잊혀질 것이 분명한 장소였다. 도현주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역시 그들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 타자들의 이웃으로 존재하고자 한다. 타인을 느끼며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이러한 그녀의 ‘이웃하기’의 태도는 세상의 모든 사라져가는 존재들을 향해 오늘도 조용히 이렇게 속삭이기 위함이다. “다만 그대가 오래도록 살아… (但願人長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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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작가 도현주는 1973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계원조형예술학교 조형과를 졸업했고 경원대학교 환경조각과에 재학중 독일로 건너가 베를린예술대학을 졸업했다. 미술 프로젝트의 작가와 기획자를 넘나드는 통합적인 예술가의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주로 서울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중이다. 현재, 2007년에 새롭게 시작한 프로젝트인 <정릉지역 공부방 프로젝트>에 매진 중이다.

    [ii]<마석이야기>의 진행 블로그는 http://artincity.org/maseok/ 이다.

    [iii]<부동산프로젝트>의 관련정보는 http://club.cyworld.com/danolhttp://club.cyworld.com/toari 에서 볼 수 있다.

    [iv]소동파의 사(詞) '수조가두(水調歌頭)'의 한 구절이자 다놀동의 한 폐상점에 간판으로 붙어있는 문구였다.
  2. 2008/12/0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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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시간에 이야기했던 작가 '도현주씨'에 대해서 내가 예전에 썼던 글.

부다씨 리뷰

2008/12/06 05:07
posted by 반야
 

부다씨와 만나기 전에는 이주노동자와 만나본 적이 없다.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외국인은 본 적이 있다. 그 때도 나는 백인이나 흑인을 보면 '관광 왔나 보다.' 혹은 '학교에서 영어 가르치나 보군' 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남아 계열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지하철에 타면 '이주노동자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나치면서 봤던 외국인을 판단하는 건 두 부류였다. 관광 혹은 일하러 온 사람.
로이에게 부다씨에 대해서는 들어왔지만 실제로는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버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이주노동자와의 만남도 처음이었다.
부다씨와의 첫 만남의 매우 어색했다. 아무 말도 안하고 있다가 부다씨가 어색하셨는지 먼저 말을 꺼내셨다. 그 때가 마석에 단속이 있고 다음날이어서 그 이야기를 하다가 로이가 왔다.
부다씨는 한국에 98년 12월에 들어오셨다고 한다. 이제 거의 10년이 다 되신 거다. 짧은 시간이 아닌 10여년이나 한국에 사신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니 내가 그 상황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주노동자의 힘듦이 느껴졌다.
한국에는 100만 명 정도의 적지 않은 인구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다고 하셨다. 100만이라는 숫자는 수원시에 살고 있는 인구와 맞먹는다. 부다씨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알았다. 그들은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어디에선가 오랜 근무시간에 위험한 일이지만 최저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에게는 살기 힘든 이곳에서 결국 이주노동자들이 선택하는 해소는 자살이나, 회사를 불태움, 동료를 폭행하는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진다. 어느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수 있을까? 나는 돈과 물건이 교환되는 것처럼 노동자의 노동과 정당한 임금, 대우가 잘 오고 간다면 서로 피해볼 게 없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있었던 명동성당에 농성에서 그들이 이야기 했던 것은 '노예가 아니다.', '때리지 마라.', '우린 기계가 아니다.' 등이었다고 한다. 정부는 이주노동자가 필요한 것은 인정하지만 노동자로써 인정하지는 않는다. 이주노동자들은 산업연수생으로 기술을 배우러 온 것이고 산재 보험이 되지 않는다.
우린 이주노동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지는 않더라도 그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주는 게 옳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들은 우리와 친구가 되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같은 장소에서 사는 오래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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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타씨는 우리가 소위 불법체류자라고, 하는 이주노동자셨다.
그렇기에 항상 불안감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라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우리와 만나기 위해 하자로 오셨다. 상당히 오랫동안 이주노동자 생활을 해오신 부타씨는 여러 가지로 생각이 깊으셨고, 많으신 분이셨다.
그런 부타씨는 내가 생각하기엔 부타씨는 주로 자신의 경험, 꿈, 이유, 현실에 관해서 말하셨었던 것 같다.

나는 부타씨가 자신의 꿈을 말하셨을 때 정말 놀라웠다. 하자센터의 북카페 같은 것을 짓고 싶으시다는 꿈 때문에 말이다. 보통 이주노동자 들이라면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부타씨의 꿈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랑은 틀렸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꿈 이 보다 멋진 꿈이 어디 있을까? 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고, 하고 계실까?
난 잘 알지 못한다 부타씨에게 들은 부분만 조금씩 알고 있을 뿐 하지만 그 조금만 봐도 내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보다. 훨씬 힘드셨다는 것이 느껴진다는 점에서 또 한번 놀랄 뿐이랄까?

그리고 부타씨의 경험을 들었을 때는 사귀었던 친구를 보내면서 또 가족을 만나지 못하면서 까지 불안한 생활을 계속해서 지내오셨다는 것과 현제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부타씨의 얘기 속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는 이유가 꼭 돈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어떻게 오는지도 일을 할 때 사고가 나서 다치게 되면 어떻게 하는지도 지금 다른 이주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위해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찾았다. 그 찾은 부분에서는 내가 처음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를 알게 됬을 때 생각한 것에서 훨씬 발전했다고, 느끼면서 지금 까지 보고, 들은 것들이 전체에서 겨우 한 귀퉁이에 걸칠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이 수업을 하면서 양쪽의 모습을 보지 않고, 한쪽만의 모습을 바라보던 나를 느꼈고, 그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도 보게되고 나서 양쪽의 모습을 바라보자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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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씨 수업 리뷰

2008/12/05 22:57
posted by 꼬미

“현재 우리나라에 일을 하기 위해 온 이주노동자 50만 명 중 20만 명이 불법체류자들이다.”처음 부다씨께서 이 말을 해주셨을 때 나는 굉장히 놀랐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그것도 불법체류자들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해서 방송에서나 그들을 봤지 실제로 살면서 그 들을 만났던 기회가 없어서 더욱 더 그랬던 것 같다. 이 전까지 내게 있어 이주노동자들은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돈을 받기 위해 오는 사람들이었고, 임금을 적게 받거나, 폭력을 당해도 아무 말 못하는 불쌍한 사람이었다. 사실 불쌍하다고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 들이 왜 임금을 적게 받거나, 폭력을 당해도 아무 말을 안 한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번 수업을 통해서 내가 굉장히 단면적인 모습만을 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다씨의 수업을 들으면서 놀랐던 점은 오히려 우리나라 안에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말을 잘하고, 한국 안에서 불합리한 행동들에 대해서 해결방안을 찾고자 시민단체와, 각 나라별 커뮤니티를 조직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려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들을 자꾸 ‘불법체류자’라는 명목아래 잡아들이고 계속 말 못하고 일이 서툴 수밖에 없는 새로운 이주노동자들을 받는다는 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고용허가 기간인 3년이 지나고 나서도 돌아가지 못한 노동자들은 항상 체포가 되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수업이 끝난 지금은 어차피 많은 사람들이 기피하는 어려운 일을 하는 이들을 자꾸 무시하면서 잡아드리는 것이 과연 고용허가 기간이 끝났는데도 돌아가지 않기 때문인지, 그 들이 계속 단체를 조직하고 한국 안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내려 하기 때문에 두려워서 인지에 대해서 아직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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